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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효 대사는 어린 시절 황룡사로 들어가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됩니다.
34세가 되던 해에 원효 대사는 8살 아래였던 의상과 공부를 더 하기 위하여 중국으로 유학을 떠나게 되는데요.
하지만 고구려 땅을 거쳐서 중국으로 가려고 하다가 고구려 군사들에게 붙들려 그 뜻을 이루지 못합니다.
11년 뒤 의상과 함께 두 번째 유학길에 오르게 됩니다.
이때 겪은 일화가 오늘 일체 유심조와 관련이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원효 대사와 해골물을 통하여 원효 대사가 깨달았던 일체 유심조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원효 대사
원효 대사(617-686)는 신라 시대 고승으로 성은 설(薛)이며, 원효는 법명입니다.
원효 대사는 일심(一心)과 화쟁(和諍) 사상을 중심으로 불교의 대중화에 힘쓰며 불교 사상 발전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즉 인간은 누구나 불성을 가지고 있어서 이것이 회복되면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원효 대사는 '도는 모든 존재에 미치나, 결국은 하나의 마음의 근원으로 돌아간다.'며 만물을 차별 없이 사랑하는 삶을 강조합니다.
일체 유심조(一切唯心造)에 대하여
젊은 시절 원효 대사는 촉망받던 유능한 승려였습니다.
의상과 함께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려고 하였을 때의 일입니다.
두 사람이 중국으로 가던 도중에 날이 어두워지고 동굴에 들어가서 잠을 자게 됩니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았고, 원효 대사는 잠결에 목이 말라 바가지에 웬 물이 담겨 있길래 그 안에 담긴 물을 벌컥 들이켜게 되지요.
원효 대사는 '그 물 참 달고 시원하다.'라고 좋아합니다.
그런데 다음날 일어나서 주변을 보니 충격과 공포에 휩싸이게 됩니다.
동굴이라고 생각했던 그곳은 파묘(破墓)된 무덤이었고, 원효 대사가 마셨던 물은 해골바가지에 들어 있던 썩은 물이었던 것입니다.
경악한 원효 대사는 전날에 느꼈던 달고 시원했던 마음은 사라지고, 구토를 하게 됩니다.
원효 대사는 이 사건을 계기로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것을 깨닫고 중국 유학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여 유학을 포기합니다.
이때 같이 중국 유학길에 올랐던 의상은 당나라에 가서 공부한 뒤 화엄종을 연구하고 신라로 돌아와 부석사를 창건하게 됩니다.
원효 대사와 해골물 일화에 관련된 일체 유심조에 대하여 알아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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